ASEAN

아세안의 욕심쟁이, 그랩

2009년 우버의 등장 이후, 차량 공유 서비스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시장이다. 2017년 리포트에서 골드만삭스는 차량 공유 서비스 산업의 가치는 2030년까지 2850억 달러, 한화로 대략 30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특히 우버는 업계 선두로서 미국 시장의 총 70%에 육박하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국가 시장에 진입하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 결과로 법적 규제에도 불구하고 현재 65개국 총 600여개에 달하는 도시에서 운행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만 놓고 보면 우버가 차량 공유 서비스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세안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바로 그랩(Grab)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버를 이긴 그랩 / Grab Official Website

아세안의 떠오르는 거인, 그랩(Grab)

그랩은 2012년 하버드 MBA 졸업생이었던 창업자 앤서니 탄에 의해 말레이시아에서 마이택시(MyTeksi)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야심 차게 콜택시 사업을 구상한 앤서니 탄이었지만 초반부터 생각보다 큰 걸림돌을 마주하였다. 당시 말레이시아의 모바일 보급율이 너무나도 낮았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빠른 통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택시 기사들은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낄 뿐더러 최신 기술에 대한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하였다. 앤서니의 해결책은 소위 ‘맨땅에 헤딩’이었다. 택시 운전기사 개개인을 찾아가며 그랩이 장래에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을 제시하였다. 말레이시아의 각종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설득하는 노력 끝에 40여명의 운전기사의 합류를 이끌면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마이택시는 그랩택시(GrabTaxi)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아세안 연합의 다른 국가 시장으로 거침없이 진출하였다. 2014년 이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면서 이름을 그랩(Grab)으로 통합하면서 현재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세안 8개국 350여개의 도시에서 운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50대 부자로 꼽힌 앤서니 탄 / FinancialTimes

콜택시 서비스로 시작한 그랩이지만 현재는 차량공유 서비스 및 퀵서비스 등 지속적인 사업 확장을 통해 아세안 내 그들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그랩의 서비스 중 가장 강점을 보이는 서비스는 단연 운송 관련 사업이다. 우버와 비슷한 형태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랩쉐어(GrabShare)와 카카오 택시와 같이 전문 택시기사가 운행하는 그랩택시(GrabTaxi)가 그 주인공이다. 아세안 운송 시장에서 2018년 이전까지는 우버와 그랩의 양강 체제였으나 이후 전세는 급격히 그랩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는 아세안의 문화적 특성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로 인해 일어났다. 다른 국가에서와 같이 우버는 등록된 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도록 제한하였다. 하지만 아세안은 많은 발전을 이룬 것과는 대조되게 은행 사용률이 매우 저조하다. 특히 25%밖에 못 미치는 계좌 보급률로 인하여 아직 대다수의 인구는 현금을 주요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버와 달리 이러한 문화적 특성을 이용한 그랩은 그랩 사용자들에게 현금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쟁에서 앞설 수 있었다. 이외에도 문화적 독특성을 적극 활용하는 그랩에 밀려 우버는 결국 2018년 3월 아세안 시장에서의 철수를 공식화하였다. 이와 더불어 그랩은 우버의 아세안 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아세안 시장 점유율 75%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달성하였다. 현재 다른 경쟁자는 보이지 않고 그나마 인도네시아의 또다른 스타트업인 기업 고젝(Go-Jek)이 분전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아직 그랩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그랩의 철저한 시장 파악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사업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랩바이크(GrabBike)이다. 8개국 중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으로 제한된 그랩바이크는 말 그대로 오토바이를 나눠탈 수 있게 연계해준 서비스이다. 운전자가 오토바이를 운전하면 뒤에서 헬멧 쓰고 잘 앉아있으면 된다고 한다. 이 또한 오토바이 공급률이 유독 높은 아세안 시장에 맞춤형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적 특수성 활용을 극대화한 그랩의 운송 서비스는 적극적인 R&D 투자가 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품질이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글맵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동남아시아의 도로 상황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고자 자사 서비스 전용 맵과 GPS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2019년 1월 T맵을 개발했던 SK텔레콤과 조인트벤처 설립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는데 이르렀다.

그 외에도 배달의 민족과 같은 그랩푸드(GrabFood)를 비롯해 퀵서비스와 동일한 그랩익스프레스(GrabExpress), 그랩바이크(GrabBike) 등 그들의 활동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나가고 있다.

막대한 양의 그랩의 운송 관련 서비스들 / AlternativeTo

그랩은 아직 배고프다.

운송업계에서 이미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그랩이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창업자인 앤서니 탄은 더 큰 그림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랩을 아세안의 우버를 넘어서 아세안 전체 플랫폼의 1인자로 키우고자 하는 야망이 있다. 그리고 그랩의 공격적인 핀테크 산업 투자에서 그 야망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2017년 그랩은 그랩페이(GrabPay)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핀테크 산업에 뛰어들었다. 간편결제 시스템을 갖춘 그랩페이는 QR코드 베이스 핀테크 앱이다. QR코드 기능과 더불어 동남아 6국 안에서는 수수료 없이 자동 환전되는 기능까지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사용률이 매우 높다. 특히 금융 서비스 사용률이 현저히 낮은 동남아시아 시장 특성은 과거 현금 사용률이 높았던 중국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기에 그랩페이가 중국에서 알리페이의 커다란 성공 시나리오를 따라갈 것이라는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더군다나 그랩페이를 통하여 손쉽게 그랩의 기타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그랩 플랫폼으로 끌어들여 아세안 시장을 아우를 수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랩페이에 만족하지 않은 앤서니 탄은 일본의 3대 소비자금융업체인 크레디트 세존(Credit Saison)과 그랩파이낸셜을 공동 설립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뱅크로부터 14억 달러 상당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2019년 1월에는 세계적인 손해보험사인 처브(Chubb)와도 협력하여 그랩 앱을 통한 보험 솔루션까지 제공하기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PMG가 선정한 ‘글로벌 핀테크 100대 기업’에서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더불어 금융시장으로의 진출로 인해 그랩 앱 가입자 수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이는 그랩이 추후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통하여 더욱 효과적인 홍보를 제공할 수 있음은 물론 더욱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쓰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랩파이낸셜에 투자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행복해 보이는건 기분탓?.) / CNBC


한동안 밝아 보일 그랩의 미래

경사는 항상 겹쳐서 오는 것이라 했는가. 그랩은 좋은 소식을 하나 더 가지고 왔다. 2018년 그랩과 우버의 합병 당시 그랩은 베트남 정부에 의해 반독점 관련 조사를 받게 되었다. 베트남의 경쟁법에 따라 합병 뒤 회사의 규모가 너무 비대한 것이 증명될 경우, 그랩의 우버 합병은 무산이 되고 우버의 사업권이 다른 회사로 넘어갈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하지만 2019년 6월 20일, 베트남 당국의 조사 결과 그랩이 베트남 경쟁법을 준수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그랩에 유일한 잠재위험요소로 꼽혔던 일까지 잘 마무리 되었다.

40여명의 택시기사로 시작한 그랩은 현재 아세안 시장 내 운송업계를 장악함은 물론 금융시장까지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세안의 우버로 이름을 알렸던 그랩. 그들의 성장이 어디까지 이뤄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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